﻿1
00:02:44,797 --> 00:02:46,164
잘 그렸네

2
00:02:49,635 --> 00:02:52,053
좀 더 여러 가지
색을 써볼래?

3
00:03:11,257 --> 00:03:12,424
토니

4
00:03:16,896 --> 00:03:17,880
네?

5
00:03:32,678 --> 00:03:35,201
토니 타키타니의
진짜 이름은

6
00:03:36,449 --> 00:03:38,683
정말
토니 타키타니였다

7
00:03:49,261 --> 00:03:51,100
토니의 아버지는

8
00:03:51,645 --> 00:03:53,356
타키타니 쇼자부로라는

9
00:03:54,051 --> 00:03:55,508
재즈 음악가였다

10
00:04:01,073 --> 00:04:03,869
태평양전쟁이 시작되기
얼마 전에

11
00:04:05,061 --> 00:04:07,895
쇼자부로는
작은 문제를 일으켜

12
00:04:08,681 --> 00:04:11,082
도쿄에서
중국으로 건너갔다

13
00:04:18,658 --> 00:04:20,669
그는 격동의
전란 시대를

14
00:04:21,928 --> 00:04:23,969
상하이의
나이트클럽에서

15
00:04:25,031 --> 00:04:27,292
한가로이 트롬본을
불며 지냈다

16
00:04:41,246 --> 00:04:42,969
그리고
전쟁이 끝난 후

17
00:04:44,284 --> 00:04:48,280
그동안 수상한 패거리들과
만났던 게 화근이 되어

18
00:04:49,388 --> 00:04:52,834
오랜 세월 형무소에
처박히는 신세가 됐다

19
00:04:59,232 --> 00:05:02,057
같은 식으로 투옥되었던
사람들 대부분이

20
00:05:03,225 --> 00:05:05,011
제대로 재판도
받지 못하고

21
00:05:06,208 --> 00:05:08,136
차례차례 처형되었다

22
00:05:23,689 --> 00:05:24,745
처형은

23
00:05:26,006 --> 00:05:27,792
항상 오후 2시에
거행되었다

24
00:05:29,417 --> 00:05:32,395
아무 예고도 없이
어느 날 갑자기

25
00:05:33,078 --> 00:05:34,758
형무소 뜰로
끌려 나가

26
00:05:35,600 --> 00:05:38,745
자동소총의 제물이
되는 것이다

27
00:05:43,676 --> 00:05:46,778
그곳에서는
삶과 죽음이

28
00:05:47,424 --> 00:05:50,503
말 그대로
종이 한 장 차이밖에 없었다

29
00:06:17,677 --> 00:06:19,422
타키타니 쇼자부로가

30
00:06:20,446 --> 00:06:23,488
홀쭉하게 야윈 몸으로
일본에 돌아온 건

31
00:06:25,122 --> 00:06:28,155
1946년 봄이었다

32
00:06:36,618 --> 00:06:37,751
돌아와 보니

33
00:06:38,557 --> 00:06:40,752
집은 도쿄 공습 때
불타버렸고

34
00:06:41,701 --> 00:06:44,279
부모님과
하나 있던 형도

35
00:06:45,074 --> 00:06:46,674
그때 죽었다

36
00:06:48,841 --> 00:06:49,808
다시 말해

37
00:06:50,991 --> 00:06:53,807
그는 천애 고아가
된 셈이었다

38
00:07:24,721 --> 00:07:25,699
그 후

39
00:07:26,627 --> 00:07:30,777
그는 외가 쪽 먼 친척뻘
여성과 결혼했다

40
00:07:38,657 --> 00:07:41,666
결혼한 이듬해
사내아이가 태어났고

41
00:07:42,862 --> 00:07:45,496
아기가 태어난 지
사흘 만에

42
00:07:46,801 --> 00:07:48,344
아기 엄마는 죽었다

43
00:07:51,203 --> 00:07:53,359
갑자기 죽은 그녀는

44
00:07:55,875 --> 00:07:59,114
눈 깜짝할 사이에
불에 타 재가 되었다

45
00:08:20,332 --> 00:08:22,788
그와 친했던
미군 소령이

46
00:08:23,536 --> 00:08:25,236
아내를 잃은 그를

47
00:08:25,764 --> 00:08:27,621
아버지처럼 위로해줬다

48
00:08:29,266 --> 00:08:34,121
그리고 자신의
이름인 '토니'를

49
00:08:35,010 --> 00:08:37,439
아이에게 붙여주면
어떻겠냐고 말했다

50
00:08:41,454 --> 00:08:44,710
앞으로 당분간은
미국의 시대가 계속될 것이고

51
00:08:45,391 --> 00:08:48,096
아들에게 미국식 이름을
지어주는 것도

52
00:08:49,151 --> 00:08:50,351
나쁘지 않은걸

53
00:08:51,130 --> 00:08:53,440
하고
쇼자부로는 생각했다

54
00:09:01,740 --> 00:09:03,929
나쁘지 않군
토니 타키타니

55
00:09:09,436 --> 00:09:10,379
나쁘지 않아

56
00:09:11,550 --> 00:09:13,891
헤이, 헤이 토니

57
00:09:31,337 --> 00:09:32,237
하지만

58
00:09:33,154 --> 00:09:34,693
그런 이름 탓에

59
00:09:36,408 --> 00:09:38,219
토니가
자기 이름을 말하면

60
00:09:39,114 --> 00:09:40,971
상대방은
묘한 표정을 지었고

61
00:09:43,048 --> 00:09:45,448
그중에는 화를 내는
사람도 있었다

62
00:09:51,390 --> 00:09:54,804
토니 타키타니는
그런 여러 가지 이유로

63
00:09:55,528 --> 00:09:57,885
늘 방에만 틀어박혀 있는
소년이었다

64
00:10:04,358 --> 00:10:06,272
철이 들었을
무렵부터

65
00:10:07,195 --> 00:10:11,617
아버지는 항상 악단을 데리고
연주 여행을 떠났기 때문에

66
00:10:12,928 --> 00:10:14,151
혼자라는 것은

67
00:10:14,778 --> 00:10:17,949
토니에게 아주
자연스러운 일이었다

68
00:10:33,399 --> 00:10:34,444
어렸을 때는

69
00:10:35,349 --> 00:10:37,210
파출부가
보살펴주었지만

70
00:10:37,310 --> 00:10:38,933
- 나 갈게
- 안녕히 가세요

71
00:10:39,033 --> 00:10:40,576
중학생이 된 후로는

72
00:10:41,327 --> 00:10:43,007
혼자서 음식을 만들고

73
00:10:43,809 --> 00:10:45,489
혼자서 문단속하고

74
00:10:46,372 --> 00:10:47,657
혼자서 잠들었다

75
00:10:49,715 --> 00:10:52,566
내일 저녁은
제가 해 먹을게요

76
00:10:54,544 --> 00:10:56,210
그래, 그럼 간다

77
00:10:57,078 --> 00:10:59,767
- 안녕히 가세요
- 잘 있거라

78
00:11:16,108 --> 00:11:18,394
하지만 외롭다고
생각하지는 않았다

79
00:11:49,500 --> 00:11:57,682
토니 타키타니

80
00:12:24,743 --> 00:12:31,154
우린 유급하니까 괜찮지만
내년엔 어찌 될지 몰라

81
00:12:31,750 --> 00:12:33,122
잘 그리긴 하는데

82
00:12:34,267 --> 00:12:36,299
체온이 느껴지지 않아

83
00:12:36,732 --> 00:12:39,299
넌 자본가의 개가 돼도
좋다는 거야?

84
00:12:39,400 --> 00:12:41,027
그건 지나친
비약이야

85
00:12:41,127 --> 00:12:43,511
네 이론은
말이 안 돼

86
00:12:44,532 --> 00:12:45,625
뭐가 말이 안 되는데?

87
00:12:49,768 --> 00:12:52,624
토니는
과 친구들이 말하는

88
00:12:53,105 --> 00:12:55,850
예술성이나
사상성 있는 그림의

89
00:12:56,111 --> 00:12:57,791
어디에 가치가 있는지

90
00:12:58,110 --> 00:12:59,868
도통 이해할 수 없었다

91
00:13:02,202 --> 00:13:03,882
그런 그림들은
토니에게

92
00:13:04,274 --> 00:13:06,646
단지 미숙하고
추악하며

93
00:13:07,119 --> 00:13:08,748
부정확할 따름이었다

94
00:13:12,491 --> 00:13:15,159
여자랑
사귀어 본 적 있어?

95
00:13:18,724 --> 00:13:19,624
있었는데

96
00:13:22,468 --> 00:13:23,801
헤어졌어

97
00:13:30,209 --> 00:13:32,535
결혼하려고 했어?

98
00:13:34,012 --> 00:13:35,555
생각해본 적도 없어

99
00:13:39,017 --> 00:13:39,995
그렇군

100
00:13:44,089 --> 00:13:45,851
하야시다는
벌써 갔어?

101
00:13:46,540 --> 00:13:48,617
30분쯤 전에
가셨어요

102
00:13:49,540 --> 00:13:51,540
점심이나 같이
먹을까 했더니만

103
00:13:52,831 --> 00:13:53,731
어때?

104
00:13:58,362 --> 00:14:00,037
좋은걸
오케이

105
00:14:03,175 --> 00:14:04,164
이거 말이야

106
00:14:06,620 --> 00:14:08,164
타원의 축은...

107
00:14:47,286 --> 00:14:49,220
토니는
기계 그리는 게

108
00:14:50,025 --> 00:14:51,475
주특기였다

109
00:14:52,124 --> 00:14:54,386
자동차, 라디오, 엔진 등

110
00:14:55,275 --> 00:14:56,886
그런 것들의 세부를

111
00:14:57,725 --> 00:15:00,142
누구보다 정교하게
묘사할 수 있었다

112
00:15:01,664 --> 00:15:03,378
일러스트레이터가
된 것도

113
00:15:03,702 --> 00:15:05,331
자연스러운 결과였다

114
00:15:09,019 --> 00:15:11,674
역시 하반기는
적자예요

115
00:15:14,452 --> 00:15:16,541
그림 도구값이
많이 올랐지

116
00:15:17,216 --> 00:15:19,330
직원이 늘어난 만큼

117
00:15:19,430 --> 00:15:23,274
그림 도구와 종이 비용이
더 들어갔으니까요

118
00:15:50,027 --> 00:15:51,707
잡지 표지
그림에서부터

119
00:15:51,954 --> 00:15:53,412
광고 삽화까지

120
00:15:55,016 --> 00:15:58,960
기계 장치에 관한 일이면
토니는 무엇이든 도맡았다

121
00:16:01,260 --> 00:16:03,305
일은 즐거웠고

122
00:16:04,443 --> 00:16:05,882
수입도 상당했다

123
00:17:17,969 --> 00:17:19,426
이만 가 보겠습니다

124
00:17:23,692 --> 00:17:24,977
먼저 실례합니다

125
00:17:36,680 --> 00:17:38,538
죄송합니다
오래 기다리셨죠?

126
00:17:38,915 --> 00:17:39,815
네

127
00:17:40,896 --> 00:17:42,353
안으로 들어오세요

128
00:17:43,151 --> 00:17:45,451
네, 실례하겠습니다

129
00:17:58,129 --> 00:18:00,607
이게 부탁하신
레이아웃이고

130
00:18:00,968 --> 00:18:01,799
네

131
00:18:01,899 --> 00:18:03,583
- A, B, C가 있는데
- 네

132
00:18:04,268 --> 00:18:05,190
A가...

133
00:18:06,751 --> 00:18:07,737
이겁니다

134
00:18:12,168 --> 00:18:13,901
B가 이것이고

135
00:18:14,790 --> 00:18:15,712
네

136
00:18:17,035 --> 00:18:18,222
그리고 C

137
00:18:18,912 --> 00:18:21,512
네, 감사합니다

138
00:18:21,612 --> 00:18:24,868
- D, E도 있습니다
- 네, 잘 받겠습니다

139
00:18:26,112 --> 00:18:27,701
처음 보는 얼굴인데

140
00:18:28,181 --> 00:18:30,570
네, 에이코라고
합니다

141
00:18:30,887 --> 00:18:32,348
잘 부탁드립니다

142
00:18:32,758 --> 00:18:34,438
나야말로
잘 부탁해요

143
00:18:36,055 --> 00:18:38,737
소중히
챙겨가겠습니다

144
00:18:46,437 --> 00:18:49,470
그녀는 마치 먼 세계로
여행을 떠나는 새가

145
00:18:51,659 --> 00:18:53,874
특별한 바람을
몸에 두르는 것처럼

146
00:18:55,041 --> 00:18:57,398
아주 자연스럽게
옷을 걸치고 있었다

147
00:19:15,061 --> 00:19:16,722
그녀는 그 후로도
몇 번인가

148
00:19:16,822 --> 00:19:19,039
토니의 작업실에
찾아왔고

149
00:19:21,395 --> 00:19:22,411
어느 날

150
00:19:23,156 --> 00:19:26,173
토니는 그녀에게 점심을
함께 하자고 말했다

151
00:19:26,918 --> 00:19:29,550
당신처럼 기분 좋게

152
00:19:30,550 --> 00:19:33,228
옷을 입고 있는
사람은 처음 봤어

153
00:19:42,088 --> 00:19:44,911
왠지 옷이란 건

154
00:19:48,032 --> 00:19:49,444
자기

155
00:19:51,393 --> 00:19:53,787
내면의
부족한 부분을

156
00:19:56,544 --> 00:19:58,455
채워주는 듯한
느낌이 들어요

157
00:20:00,540 --> 00:20:02,083
전 좀 제멋대로예요

158
00:20:05,445 --> 00:20:08,500
게다가 굉장히

159
00:20:10,411 --> 00:20:14,300
사치스럽다고나 할까?

160
00:20:15,800 --> 00:20:16,700
그래서

161
00:20:18,778 --> 00:20:20,094
월급 대부분이

162
00:20:20,817 --> 00:20:22,578
옷값으로 사라지죠

163
00:20:26,466 --> 00:20:29,228
난 그림 재료 외엔
돈 쓸 일이 전혀 없어

164
00:21:08,775 --> 00:21:11,508
아무래도 사랑에
빠진 것 같아요

165
00:21:16,941 --> 00:21:19,841
처음으로 결혼이라는 것에
대해 생각해봤어요

166
00:21:21,454 --> 00:21:23,082
어디가 맘에 들었니?

167
00:21:25,686 --> 00:21:27,319
뭐랄까

168
00:21:29,608 --> 00:21:32,664
옷을 입기 위해
태어난 사람 같아요

169
00:21:36,803 --> 00:21:37,917
그거 대단하군

170
00:21:41,618 --> 00:21:43,163
쇼자부로와 토니는

171
00:21:44,043 --> 00:21:45,843
2, 3년에
한 번 정도

172
00:21:46,148 --> 00:21:47,828
얼굴을 마주할
뿐이었는데

173
00:21:48,969 --> 00:21:50,419
용건이 다 끝나면

174
00:21:51,672 --> 00:21:53,139
둘 사이에는

175
00:21:54,367 --> 00:21:56,305
더 이상
할 얘기가 없었다

176
00:22:00,069 --> 00:22:01,698
타키타니 쇼자부로는

177
00:22:02,397 --> 00:22:04,528
아버지 노릇이
적성에 안 맞았고

178
00:22:06,283 --> 00:22:07,826
토니 타키타니 역시

179
00:22:08,967 --> 00:22:11,038
아들 노릇이
적성에 맞지 않았다

180
00:22:22,671 --> 00:22:24,300
다섯 번째 만났을 때

181
00:22:25,406 --> 00:22:28,160
토니는 그녀에게
청혼했다

182
00:22:32,938 --> 00:22:34,227
하지만 그녀에겐

183
00:22:35,555 --> 00:22:37,838
예전부터 사귀는
애인이 있었다

184
00:22:43,160 --> 00:22:44,060
그리고

185
00:22:44,977 --> 00:22:46,657
토니와
그녀의 사이에는

186
00:22:47,262 --> 00:22:49,249
15살이라는
나이 차가 있었다

187
00:23:04,713 --> 00:23:06,393
제가 그런 거 아니죠?

188
00:23:29,082 --> 00:23:30,837
생각할 시간을
좀 달라고

189
00:23:33,553 --> 00:23:34,804
그녀는 말했다

190
00:24:00,701 --> 00:24:01,601
고독이란

191
00:24:02,952 --> 00:24:04,495
감옥 같은 것이라고

192
00:24:05,446 --> 00:24:06,602
그는 생각했다

193
00:24:11,791 --> 00:24:14,505
만약 그녀가 결혼하고
싶지 않다고 한다면

194
00:24:15,702 --> 00:24:18,102
난 이대로
죽어버릴지도 모른다

195
00:24:19,602 --> 00:24:21,230
토니는
자신의 심정을

196
00:24:21,841 --> 00:24:23,691
분명하게
설명하고 싶었다

197
00:24:26,873 --> 00:24:28,553
갑자기 불러내서
미안해

198
00:24:29,628 --> 00:24:32,328
확실히 우린 15살이나
나이 차가 있지만

199
00:24:32,428 --> 00:24:35,214
지금까지 자신의 인생이
얼마나 고독했으며

200
00:24:36,549 --> 00:24:39,595
얼마나 많은 것을
잃어왔는지를

201
00:24:41,150 --> 00:24:44,112
당연히
젊은 그 사람과

202
00:24:44,212 --> 00:24:46,389
잘 될 가능성도
있지만

203
00:24:46,489 --> 00:24:48,691
인생이란 건 말야

204
00:24:48,791 --> 00:24:50,769
그리고 그녀로 인해
처음으로

205
00:24:51,919 --> 00:24:54,356
그런 것들을
깨닫게 됐다는 것을

206
00:24:54,456 --> 00:24:58,217
고독뿐만이
아니라

207
00:24:58,317 --> 00:25:01,970
정말 소중한
만남이라든지

208
00:26:15,155 --> 00:26:19,033
토니 타키타니의 인생에서
고독한 시기는 끝났다

209
00:26:22,522 --> 00:26:23,893
아침에 눈을 뜨면

210
00:26:24,949 --> 00:26:27,164
토니는 우선 그녀의
모습을 찾았다

211
00:26:28,533 --> 00:26:31,766
옆에 잠들어 있는
그녀가 보이면 안심했고

212
00:26:33,544 --> 00:26:36,598
보이지 않을 때는
불안해했다

213
00:26:42,071 --> 00:26:43,928
그에게 고독하지
않다는 것은

214
00:26:44,826 --> 00:26:48,273
조금은 기묘한
상황이었다

215
00:26:52,493 --> 00:26:54,483
고독에서
벗어남으로써

216
00:26:54,982 --> 00:26:57,160
또다시 고독해지면
어떡하나

217
00:26:58,337 --> 00:27:01,671
하는 공포에 휩싸이게
되었기 때문이다

218
00:27:05,328 --> 00:27:07,173
가끔
그런 생각을 하면

219
00:27:08,362 --> 00:27:10,784
식은땀이 날 정도로
무서워졌다

220
00:27:17,117 --> 00:27:18,554
그런 공포감은

221
00:27:19,445 --> 00:27:21,751
결혼 후 석 달 동안
계속되었다

222
00:27:25,295 --> 00:27:26,195
하지만

223
00:27:26,434 --> 00:27:28,684
새로운 생활에
익숙해짐에 따라

224
00:27:29,385 --> 00:27:31,163
그 공포감도 점점
엷어져갔다

225
00:27:31,263 --> 00:27:33,007
정말 독특하죠?

226
00:27:33,379 --> 00:27:36,658
이건 새순이잖아

227
00:28:07,001 --> 00:28:10,018
두 사람의 결혼생활에
그림자를 드리울만한 것은

228
00:28:10,849 --> 00:28:12,563
무엇 하나
존재하지 않았다

229
00:28:16,811 --> 00:28:19,088
그녀는 제법
유능한 주부였고

230
00:28:19,638 --> 00:28:21,734
집안일도
척척 잘 해냈다

231
00:28:37,843 --> 00:28:39,365
하지만 딱 한 가지

232
00:28:40,248 --> 00:28:42,605
토니의 마음에
걸리는 점이 있었는데

233
00:28:44,171 --> 00:28:45,285
그것은 아내가

234
00:28:46,607 --> 00:28:49,642
옷을 지나치게
많이 사는 것이었다

235
00:29:27,247 --> 00:29:28,992
옷이 눈에 들어오면

236
00:29:30,503 --> 00:29:33,275
그녀는 '전혀'라고 해도
과언이 아닐 정도로

237
00:29:33,375 --> 00:29:35,347
자제하지 못했다

238
00:29:36,891 --> 00:29:38,691
한순간에
표정이 바뀌고

239
00:29:39,752 --> 00:29:41,547
목소리까지 바뀌었다

240
00:29:47,445 --> 00:29:48,902
특히 더 심해진 건

241
00:29:49,917 --> 00:29:52,478
유럽 여행을
갔을 때부터였다

242
00:29:53,808 --> 00:29:55,467
그녀는 여행 중에

243
00:29:56,609 --> 00:29:58,693
어처구니없을
정도로 많은

244
00:29:58,793 --> 00:30:00,800
명품 옷을
마구잡이로 사들였다

245
00:30:04,018 --> 00:30:07,029
그녀는 마치
홀린 듯이

246
00:30:07,468 --> 00:30:09,622
닥치는 대로
옷을 사들였고

247
00:30:10,568 --> 00:30:12,568
토니는 그녀
뒤를 쫓아다니면서

248
00:30:12,968 --> 00:30:14,601
옷값을 냈다

249
00:30:38,262 --> 00:30:39,729
일본에 돌아와서도

250
00:30:40,779 --> 00:30:42,459
그 열기는
식지 않았다

251
00:30:46,260 --> 00:30:47,554
그녀는 연일

252
00:30:48,654 --> 00:30:50,596
옷을 사러
돌아다녔다

253
00:30:54,179 --> 00:30:58,496
거대한 옷장을 몇 개
더 주문해야만 했고

254
00:30:59,974 --> 00:31:01,996
구두를 수납하기
위한 선반도

255
00:31:02,746 --> 00:31:04,031
특별히 주문했다

256
00:31:07,147 --> 00:31:08,385
그것도 모자라

257
00:31:09,216 --> 00:31:10,673
방 한 칸을 통째로

258
00:31:11,377 --> 00:31:13,807
옷방으로
개조해야만 했다

259
00:31:15,055 --> 00:31:18,785
- 색은 이거 하나인가요?
- 네, 그 색 하나예요

260
00:32:53,554 --> 00:32:54,487
여보세요

261
00:32:55,956 --> 00:32:57,054
아, 아버지

262
00:32:57,735 --> 00:32:59,486
오랜만이에요

263
00:33:09,598 --> 00:33:10,498
그래요?

264
00:33:32,493 --> 00:33:35,135
자리 준비해드릴 테니
잠시 기다려주세요

265
00:33:37,781 --> 00:33:39,326
자리 만들어주겠대

266
00:33:42,581 --> 00:33:44,124
아버지 저기 계시네

267
00:33:45,260 --> 00:33:47,831
- 연주하는 거 처음 보지?
- 처음이에요

268
00:34:03,257 --> 00:34:04,445
쇼자부로는

269
00:34:04,907 --> 00:34:08,323
옛날과 똑같은 음악을
연주하고 있었다

270
00:34:13,701 --> 00:34:15,190
하지만 그 음악은

271
00:34:16,136 --> 00:34:20,323
토니가 기억하고 있는 아버지의
옛날 분위기와 좀 다르게 느껴졌다

272
00:34:27,614 --> 00:34:29,669
아주 미미한
차이일지도 모른다

273
00:34:34,758 --> 00:34:35,825
하지만 그는

274
00:34:36,952 --> 00:34:40,815
그 차이가
중요하게 생각됐다

275
00:34:50,770 --> 00:34:51,670
토니는

276
00:34:52,420 --> 00:34:54,634
연주하고 있는
아버지 옆으로 가서

277
00:34:56,087 --> 00:34:58,087
도대체 뭐가 다른 거죠
아버지?

278
00:34:58,679 --> 00:35:01,304
라고
물어보고 싶었다

279
00:35:29,343 --> 00:35:30,243
조금만

280
00:35:34,281 --> 00:35:36,120
옷 사는 걸
줄이는 게 어때?

281
00:35:44,612 --> 00:35:47,765
난 지금 돈을
문제 삼는 게 아냐

282
00:35:49,465 --> 00:35:52,026
당신이 아름다워지는 건
나에게도 기쁜 일이야

283
00:35:52,126 --> 00:35:53,099
하지만

284
00:35:55,734 --> 00:35:58,690
이렇게 많은 옷이
과연 필요한 걸까?

285
00:36:14,121 --> 00:36:15,869
나도 알고 있어요

286
00:36:17,923 --> 00:36:18,823
하지만

287
00:36:19,496 --> 00:36:21,639
나 자신을
어떻게 할 수가 없어요

288
00:36:25,766 --> 00:36:27,190
예쁜 옷을 보면

289
00:36:28,624 --> 00:36:31,290
사지 않을 수
없게 돼요

290
00:36:33,207 --> 00:36:34,578
사고 싶은 마음을

291
00:36:36,310 --> 00:36:40,146
억제할 수가
없는 거죠

292
00:36:43,917 --> 00:36:45,459
마치 중독된 것처럼

293
00:37:07,459 --> 00:37:08,359
하지만

294
00:37:09,295 --> 00:37:11,448
어떻게든 사지 않도록
애써볼게요

295
00:37:13,048 --> 00:37:13,948
라고

296
00:37:15,976 --> 00:37:17,603
그녀는 약속했다

297
00:37:36,855 --> 00:37:38,189
일주일 정도

298
00:37:39,413 --> 00:37:42,033
그녀는 새 옷이
눈에 띄지 않도록

299
00:37:42,861 --> 00:37:44,541
집 안에
틀어박혀 있었다

300
00:37:46,233 --> 00:37:47,913
하지만
그러고 있자니

301
00:37:49,335 --> 00:37:52,511
왠지 자신이 텅 비어버린 듯한
기분이 들었다

302
00:38:14,526 --> 00:38:16,326
그녀는 매일
옷 방에 들어가

303
00:38:16,898 --> 00:38:18,959
자기 옷을
바라보며 지냈다

304
00:38:22,281 --> 00:38:25,214
아무리 보고 있어도
싫증 나지 않았다

305
00:38:34,835 --> 00:38:36,391
그리고
보면 볼수록

306
00:38:37,274 --> 00:38:39,324
새 옷이
갖고 싶어졌다

307
00:38:41,664 --> 00:38:43,207
일단 갖고 싶어지니

308
00:38:44,036 --> 00:38:45,716
더 이상
참을 수가 없었다

309
00:38:46,413 --> 00:38:49,160
그냥 단순히
참을 수가 없었다

310
00:38:50,183 --> 00:38:53,134
하지만 그녀는 남편을
깊이 사랑하고 있었고

311
00:38:54,980 --> 00:38:57,491
남편 말이
옳다고 생각했다

312
00:38:59,871 --> 00:39:01,671
몸은 하나밖에
없는 것이다

313
00:39:03,038 --> 00:39:05,671
정말로 필요 없어

314
00:39:08,849 --> 00:39:11,093
이렇게 많은 옷은

315
00:39:16,921 --> 00:39:18,993
그리고 그녀는

316
00:39:19,093 --> 00:39:21,549
며칠 전에 산
코트와 원피스를

317
00:39:21,994 --> 00:39:23,674
반품할 수
없을까 해서

318
00:39:24,460 --> 00:39:26,140
단골 부티크를
찾아갔다

319
00:39:27,387 --> 00:39:28,860
정말 죄송해요

320
00:39:30,116 --> 00:39:31,701
또 들르세요

321
00:39:55,816 --> 00:39:57,604
옷을 돌려주고 나니

322
00:39:58,455 --> 00:40:00,783
몸이 조금은
가벼워진 것 같았다

323
00:40:13,321 --> 00:40:14,221
하지만

324
00:40:15,149 --> 00:40:16,778
신호를
기다리는 동안

325
00:40:17,582 --> 00:40:20,760
그녀는 내내
지금 막 돌려준

326
00:40:21,432 --> 00:40:24,010
코트와 원피스를
생각하고 있었다

327
00:40:32,865 --> 00:40:34,553
그 옷이
어떤 색이었으며

328
00:40:35,620 --> 00:40:37,420
어떤 디자인이었고

329
00:40:39,220 --> 00:40:40,909
어떤 감촉이었는지

330
00:44:07,879 --> 00:44:10,290
- 하나에 얼마나 드는데요?
- 7만 엔

331
00:44:10,548 --> 00:44:13,423
7만 엔?
그럼 4개에 28만 엔?

332
00:44:14,467 --> 00:44:15,890
세상에나

333
00:44:16,834 --> 00:44:20,045
사회보험이 안 된다니
정말 힘드시겠네요

334
00:44:22,979 --> 00:44:23,879
히사코

335
00:44:26,449 --> 00:44:27,349
히사코

336
00:44:28,521 --> 00:44:30,201
너 회사
그만뒀다면서?

337
00:44:31,977 --> 00:44:33,762
안 좋은 일이
좀 많았거든요

338
00:44:36,726 --> 00:44:38,726
그래서 지금
뭐 해서 먹고사니?

339
00:44:40,332 --> 00:44:42,904
이탈리안 레스토랑에서
아르바이트해요

340
00:44:56,679 --> 00:44:57,757
언니

341
00:44:58,807 --> 00:45:01,224
나 여기 끝나면
면접 보러 가

342
00:45:04,713 --> 00:45:06,021
이것 좀 봐봐

343
00:45:08,635 --> 00:45:10,713
사이즈 7호

344
00:45:11,318 --> 00:45:14,337
신장 165cm 전후

345
00:45:14,664 --> 00:45:17,413
신발 사이즈
230mm인 여성

346
00:45:20,681 --> 00:45:22,970
좀 특이한
조건이긴 하지만

347
00:45:24,670 --> 00:45:26,636
조건이 나랑 딱 맞아

348
00:45:27,847 --> 00:45:31,812
게다가 월급도
이렇게 많아

349
00:45:34,092 --> 00:45:35,803
조심하는 게
좋을지 몰라

350
00:45:39,689 --> 00:45:42,614
- 아! 왔다!
- 준비 다 됐습니다

351
00:45:44,560 --> 00:45:47,782
- 어머나!
- 너무 예쁘다!

352
00:46:35,845 --> 00:46:36,789
실례합니다

353
00:46:51,011 --> 00:46:53,445
응모한 13명의
여성 중에서

354
00:46:55,022 --> 00:46:58,700
토니는 아내의 체형에
가장 가까운 여성을 선발했다

355
00:47:44,644 --> 00:47:45,759
편하게 있어요

356
00:47:46,401 --> 00:47:47,456
감사합니다

357
00:47:49,667 --> 00:47:51,389
일 자체는
어렵지 않아요

358
00:47:54,956 --> 00:47:56,628
매일 9시부터
5시까지

359
00:47:56,728 --> 00:47:59,556
여기에 와서
전화를 받고

360
00:48:00,928 --> 00:48:05,489
나 대신 원고를
전하거나

361
00:48:06,522 --> 00:48:07,979
자료를 받아두거나

362
00:48:09,581 --> 00:48:11,403
복사해두는
것뿐이니까요

363
00:48:15,742 --> 00:48:16,642
네

364
00:48:18,358 --> 00:48:21,070
단, 조건이
하나 있어요

365
00:48:27,636 --> 00:48:29,351
얼마 전에
아내가 죽었는데

366
00:48:33,471 --> 00:48:36,427
집에 그 사람이 남긴 옷이
산더미처럼 많아요

367
00:48:37,465 --> 00:48:40,160
거의 새 옷이거나
새 옷과 마찬가지인데

368
00:48:41,802 --> 00:48:44,394
여기서 일하는 동안
그걸 제복 대신에

369
00:48:45,339 --> 00:48:49,676
아가씨가
입어주었으면 해요

370
00:49:03,602 --> 00:49:04,591
매일

371
00:49:08,150 --> 00:49:10,489
부인의 옷을요?

372
00:49:12,021 --> 00:49:12,921
네

373
00:49:14,224 --> 00:49:17,310
그래서 여러 사이즈를
채용 조건으로 했던 거예요

374
00:49:18,179 --> 00:49:21,346
이상하게 들릴 거란 건
나도 알지만

375
00:49:21,630 --> 00:49:23,079
다른 뜻은 없어요

376
00:49:24,211 --> 00:49:27,615
단지 아내가 죽었다는 걸
받아들일 만한 시간이 필요해요

377
00:49:27,715 --> 00:49:30,292
아가씨가 아내의 옷을 입고
곁에 있어 준다면

378
00:49:30,392 --> 00:49:34,956
아내가 죽고 없다는 사실을
실감할 수 있을 거 같아요

379
00:49:39,260 --> 00:49:40,603
솔직히

380
00:49:41,963 --> 00:49:46,470
그녀는 토니 타키타니의 말을
잘 이해할 수 없었다

381
00:49:49,315 --> 00:49:52,880
하지만 이 사람은 그렇게
나쁜 사람처럼 보이지는 않는다

382
00:49:53,592 --> 00:49:55,221
아내를 잃은
충격으로

383
00:49:55,820 --> 00:49:57,786
어딘가
좀 이상해진 거야

384
00:49:58,670 --> 00:50:00,127
게다가 무엇보다도

385
00:50:00,982 --> 00:50:03,392
다음 달에는
실업급여도 끝나니

386
00:50:04,569 --> 00:50:06,947
그녀는 일을
해야만 했다

387
00:50:25,006 --> 00:50:26,190
알겠습니다

388
00:50:27,508 --> 00:50:30,128
아니, 솔직히

389
00:50:32,273 --> 00:50:36,439
자세한 사정은
잘 모르겠지만

390
00:50:39,720 --> 00:50:42,439
말씀하신 대로
하겠습니다

391
00:50:44,258 --> 00:50:46,161
그래요?

392
00:50:46,415 --> 00:50:47,315
고마워요

393
00:50:49,130 --> 00:50:50,196
그 전에

394
00:50:52,566 --> 00:50:56,107
부인의 옷을

395
00:50:56,858 --> 00:50:59,994
잠깐 볼 수 있을까요?

396
00:51:01,441 --> 00:51:02,341
물론이죠

397
00:51:03,641 --> 00:51:05,580
사이즈가 잘 맞는지

398
00:51:05,680 --> 00:51:09,108
한 번 입어 보는 게
좋을 거 같아서요

399
00:51:10,307 --> 00:51:11,207
물론이죠

400
00:51:25,742 --> 00:51:28,378
난 밖에서 기다릴 테니
입어보세요

401
00:51:28,702 --> 00:51:29,602
네

402
00:52:41,986 --> 00:52:44,272
몇백 벌이나 되는
아름다운 옷들이

403
00:52:45,022 --> 00:52:46,879
그곳에 즐비하게
걸려 있었다

404
00:52:59,693 --> 00:53:03,342
이렇게 아름다운 옷들을
방 한가득 남겨두고 죽다니

405
00:53:04,431 --> 00:53:06,308
어떤 기분이었을까

406
00:53:07,531 --> 00:53:09,253
하고
그녀는 생각했다

407
00:53:40,668 --> 00:53:42,012
옷도, 구두도

408
00:53:42,829 --> 00:53:45,268
마치 그녀를 위해
만들어진 것처럼

409
00:53:46,090 --> 00:53:47,633
사이즈가 딱 맞았다

410
00:56:02,709 --> 00:56:03,453
무슨 일이죠?

411
00:56:03,553 --> 00:56:07,287
잠시 후 토니 타키타니가
상황을 보러 와서

412
00:56:07,387 --> 00:56:09,131
왜 울고 있는 건지

413
00:56:10,787 --> 00:56:12,320
그녀에게 물어보았다

414
00:56:12,420 --> 00:56:13,449
왜 그러세요?

415
00:56:16,498 --> 00:56:17,457
죄송합니다

416
00:56:21,264 --> 00:56:22,164
죄송해요

417
00:56:26,576 --> 00:56:27,476
왠지

418
00:56:29,755 --> 00:56:31,611
잘은 모르겠지만

419
00:56:35,133 --> 00:56:36,033
아마도

420
00:56:38,811 --> 00:56:39,888
이렇게

421
00:56:41,272 --> 00:56:43,066
예쁜 옷이

422
00:56:45,088 --> 00:56:46,717
이렇게
많이 있는 걸

423
00:56:47,250 --> 00:56:49,035
본 적이 없어서
그랬나 봐요

424
00:56:53,060 --> 00:56:53,960
죄송해요

425
00:56:55,796 --> 00:56:57,915
머리가 좀 어떻게 된
모양이에요

426
00:57:00,433 --> 00:57:01,333
죄송합니다

427
00:57:24,358 --> 00:57:26,585
우선 일주일
동안 입을

428
00:57:26,685 --> 00:57:29,024
옷과 구두를
골라서 가져가세요

429
00:57:35,502 --> 00:57:36,591
그리고

430
00:57:37,602 --> 00:57:39,391
날이 추워지면
곤란하니까

431
00:57:40,435 --> 00:57:42,292
코트도 가져가세요

432
00:57:43,980 --> 00:57:45,837
라고
토니 타키타니는 말했다

433
00:57:49,950 --> 00:57:54,638
그녀는 따뜻해 보이는
회색 캐시미어 코트를 골랐다

434
00:57:56,005 --> 00:57:58,517
코트는
새털처럼 가벼웠다

435
00:58:00,916 --> 00:58:02,905
그렇게 가벼운
코트를 입은 건

436
00:58:03,744 --> 00:58:05,107
난생처음이었다

437
00:58:43,724 --> 00:58:44,791
그 옷들은

438
00:58:45,414 --> 00:58:48,303
아내가 남기고 간
그림자처럼 보였다

439
00:59:09,362 --> 00:59:12,017
그 그림자는
얼마 전까지만 해도

440
00:59:12,821 --> 00:59:14,806
따스한 숨결을
부여받아

441
00:59:16,267 --> 00:59:18,728
아내와 함께
움직이던 그림자였다

442
00:59:26,750 --> 00:59:27,761
하지만 지금

443
00:59:29,078 --> 00:59:30,758
그의 눈앞에
있는 것은

444
00:59:32,452 --> 00:59:34,285
생명의 뿌리를 잃고

445
00:59:35,422 --> 00:59:37,285
시시각각
메말라가는

446
00:59:38,446 --> 00:59:40,318
그림자 무리에
불과했다

447
01:00:02,983 --> 01:00:03,883
토니는

448
01:00:05,318 --> 01:00:07,062
그 옷들을
보고 있는 사이

449
01:00:09,304 --> 01:00:12,805
점점 숨이
갑갑해져 왔다

450
01:00:36,616 --> 01:00:39,405
미안하지만
사정이 바뀌었어요

451
01:00:43,023 --> 01:00:46,550
당신이 가져간 옷과 구두는
전부 당신에게 주겠어요

452
01:00:53,138 --> 01:00:54,038
그러니

453
01:00:55,177 --> 01:00:56,857
이 일은
잊어주기를 바라요

454
01:01:00,518 --> 01:01:03,089
그리고 아무에게도
얘기하지 말아 주세요

455
01:01:29,870 --> 01:01:31,475
- 안녕
- 안녕

456
01:01:31,575 --> 01:01:33,140
그 세탁소
진짜 엉망이래

457
01:01:33,240 --> 01:01:36,742
- 난 몰랐지
- 얼룩이 그냥 남아있대

458
01:01:39,192 --> 01:01:41,481
오늘도
명품 옷이네?

459
01:01:43,258 --> 01:01:45,408
굉장해, 울 실크야

460
01:01:45,521 --> 01:01:47,922
비싸겠다

461
01:01:48,125 --> 01:01:50,992
10만 엔은 하겠는데?

462
01:01:51,092 --> 01:01:55,247
이렇게 비싼 옷들을 대체
어디서 어떻게 구한 거야?

463
01:01:55,862 --> 01:01:57,270
설명할 수 없어

464
01:01:57,964 --> 01:02:00,759
그리고 설명해봤자

465
01:02:02,503 --> 01:02:04,574
어차피 너희들은
믿지 않을 거야

466
01:02:06,358 --> 01:02:07,815
그게 무슨 말이야?

467
01:02:24,846 --> 01:02:26,179
토니는 결국

468
01:02:27,174 --> 01:02:28,460
헌 옷 장수를 불러

469
01:02:28,962 --> 01:02:32,225
아내가 남기고 간 옷을
전부 팔아넘겼다

470
01:02:41,447 --> 01:02:42,347
그는

471
01:02:43,308 --> 01:02:46,036
텅 비어버린
과거의 옷방을

472
01:02:47,447 --> 01:02:50,502
오랫동안 그대로
비워두었다

473
01:03:02,095 --> 01:03:02,995
그리고

474
01:03:03,422 --> 01:03:05,779
과거에 품었던
그 선명했던 감정마저

475
01:03:06,655 --> 01:03:09,358
기억 밖으로
물러가고 있었다

476
01:03:18,543 --> 01:03:21,010
기억은 바람에
흔들리는 안개처럼

477
01:03:21,732 --> 01:03:23,521
천천히 그 형태를
바꾸었고

478
01:03:24,577 --> 01:03:26,243
형태를 바꿀 때마다

479
01:03:27,005 --> 01:03:28,119
희미해져 갔다

480
01:03:37,763 --> 01:03:39,443
아내가 죽은 지
2년 후

481
01:03:40,177 --> 01:03:41,805
타키타니 쇼자부로가

482
01:03:42,015 --> 01:03:43,451
간암으로 죽었다

483
01:03:59,986 --> 01:04:01,528
남기고 간 것이라곤

484
01:04:02,547 --> 01:04:03,661
유품인 악기와

485
01:04:04,530 --> 01:04:07,244
엄청난 양의 오래된
재즈 레코드뿐이었다

486
01:04:20,006 --> 01:04:22,291
레코드에서는
곰팡내가 났기 때문에

487
01:04:23,019 --> 01:04:26,150
정기적으로 옷방 창문을
열어두어야만 했다

488
01:04:30,149 --> 01:04:32,983
그렇게
일 년이 지났다

489
01:04:43,285 --> 01:04:44,185
하지만

490
01:04:45,068 --> 01:04:47,854
그런 레코드 더미를
보관하고 있는 것조차

491
01:04:48,101 --> 01:04:49,803
점점 귀찮아졌다

492
01:04:51,507 --> 01:04:52,407
토니는

493
01:04:52,790 --> 01:04:55,674
중고 레코드 장수를 불러
값을 매기게 했다

494
01:05:01,313 --> 01:05:03,213
귀한 레코드가
많은 덕분에

495
01:05:03,975 --> 01:05:05,689
꽤 높은 가격이
매겨졌지만

496
01:05:06,381 --> 01:05:08,863
그에게는 아무래도
상관없는 일이었다

497
01:06:27,689 --> 01:06:30,167
레코드 더미가
사라지고 나니

498
01:06:32,238 --> 01:06:33,523
토니 타키타니는

499
01:06:34,407 --> 01:06:37,145
이번에야말로 정말

500
01:06:38,634 --> 01:06:40,111
외톨이가 되었다

501
01:07:11,633 --> 01:07:14,689
와주셔서
대단히 감사합니다

502
01:07:16,683 --> 01:07:17,583
자네 왔군

503
01:07:17,999 --> 01:07:20,100
오늘은
이만 가 볼게요

504
01:07:20,200 --> 01:07:23,444
더 있다 가게
얘기할 것도 있으니

505
01:07:24,178 --> 01:07:25,078
네

506
01:07:36,802 --> 01:07:38,431
토니 타키타니 씨죠?

507
01:07:40,147 --> 01:07:41,047
네

508
01:07:44,576 --> 01:07:45,862
많이들 오셨군요

509
01:07:56,589 --> 01:07:57,780
사실 전

510
01:08:00,493 --> 01:08:02,993
갑자기 이런 말을 드려서
놀라시겠지만

511
01:08:05,804 --> 01:08:06,704
그때

512
01:08:08,188 --> 01:08:10,331
에이코에게
버림받은 남자입니다

513
01:08:16,409 --> 01:08:19,293
그 녀석
죽었다더군요

514
01:08:23,349 --> 01:08:25,104
그 녀석 때문에
힘드셨죠?

515
01:08:32,192 --> 01:08:33,872
별로 힘들지도 않았고

516
01:08:36,262 --> 01:08:37,547
벌써 잊었습니다

517
01:08:44,337 --> 01:08:46,979
그리고 '그 녀석'이라고
부르지 마십시오

518
01:08:49,441 --> 01:08:51,227
역시 당신도
별거 아니었군

519
01:08:52,333 --> 01:08:54,833
당신 그림이
별거 아닌 것처럼

520
01:09:38,491 --> 01:09:39,779
그는 가끔

521
01:09:41,413 --> 01:09:43,935
예전의 그 옷방에서

522
01:09:45,024 --> 01:09:47,013
아내가 남기고 간
옷을 보고

523
01:09:47,818 --> 01:09:49,035
눈물을 흘렸던

524
01:09:50,024 --> 01:09:53,272
한 여자를 떠올렸다

525
01:10:01,068 --> 01:10:02,031
그리고

526
01:10:03,585 --> 01:10:05,580
흐느껴 울던
그녀의 목소리가

527
01:10:06,286 --> 01:10:08,224
기억 속에
되살아났다

528
01:10:09,444 --> 01:10:10,444
이렇게

529
01:10:12,249 --> 01:10:13,278
예쁜 옷이

530
01:10:15,780 --> 01:10:17,408
이렇게 많이 있는 걸

531
01:10:18,018 --> 01:10:19,804
본 적이 없어서
그랬나 봐요

532
01:10:23,169 --> 01:10:24,135
그런 걸

533
01:10:24,785 --> 01:10:26,502
기억하고
싶지는 않았다

534
01:10:27,713 --> 01:10:28,613
하지만

535
01:10:29,946 --> 01:10:32,780
많은 일을 완전히
잊어버린 뒤에도

536
01:10:34,569 --> 01:10:37,524
이상하게
그 여자만은

537
01:10:38,702 --> 01:10:40,457
잊혀지지 않았다

538
01:11:00,773 --> 01:11:03,128
이봐, 아가씨
장갑이 있는데

539
01:11:03,228 --> 01:11:04,684
손 좀 줘봐

540
01:11:05,578 --> 01:11:07,292
장갑을 두 개
보내왔더라고

541
01:11:07,435 --> 01:11:09,773
사이즈 딱이네

542
01:11:10,450 --> 01:11:11,395
하나 줄게

543
01:11:11,861 --> 01:11:13,923
보라색이랑
노란색이 있는데

544
01:11:14,023 --> 01:11:15,565
아무거나 괜찮아요

545
01:11:16,350 --> 01:11:18,207
- 하지만
- 알아서 주세요

546
01:11:19,117 --> 01:11:21,061
내 맘대로 줄 순 없지

547
01:11:21,415 --> 01:11:23,250
하지만
정말 괜찮아요

548
01:11:23,689 --> 01:11:25,369
노란색이든 보라색이든

549
01:11:26,000 --> 01:11:27,406
정말 상관없겠어?

550
01:11:27,506 --> 01:11:28,568
괜찮아요

551
01:11:28,668 --> 01:11:31,454
맞다, 그게 말이야

552
01:11:31,617 --> 01:11:33,523
보라색 장갑은

553
01:11:33,623 --> 01:11:37,523
엄지손가락 쪽에 말이야
이렇게 생겼어

554
01:11:38,634 --> 01:11:40,223
어쨌든 상관없어요

555
01:11:42,034 --> 01:11:43,716
안 주셔도 되거든요

556
01:11:44,284 --> 01:11:47,456
잠깐
무슨 말투가 그래?

557
01:11:48,320 --> 01:11:49,220
이봐!

558
01:12:08,317 --> 01:12:12,254
{\an8}사이토 히사코

